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펠리페 2세 (문단 편집) == 치세의 명암 == 스페인 내치의 역사상 펠리페 2세의 치세는 이전시대인 카스티야-아라곤 사이의 혼인을 통한 왕실 통합을 이루어 스페인을 형성해 만들어낸 [[이사벨 1세]], [[페르난도 2세]] 시절 못지않게 중요한 시절로 평가된다. 기본적인 왕실과 영토의 통합으로 스페인이란 국가의 하드웨어를 만들어낸게 가톨릭 공동왕이라면 이걸 실질적으로 다스리며 각 지방의 요구와 자원을 총괄지휘할 전문 관료 중심의 정부 체계, 즉 소프트웨어를 만든건 펠리페 2세 시대의 행정개혁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인 자체의 뿐만 아니라 각종 상속과 군사적 정복을 통해 얻은 [[이베리아 반도]] 외 스페인 제국의 통치 기반과 체계 또한 이때 기틀이 잡혔다. 전통적으로 영미권+네덜란드와과 여기에 영향력을 받은 한국의 펠리페 2세를 바라보는 관점은 근세 [[스페인인]]이 내부적으로 본 내치의 성과를 반영하지 않아 박했던 측면이 있다. ||[[파일:Sistema polisinodial_regimen austriaca de monarquia hispanica.jpg|width=100%]]|| ||<:>'''펠리페 2세 시기 도입된 스페인 왕실 위원회 정부 구조도'''|| 이 와중 가장 중요한 행정 개혁은 현대 국가의 각종 정부부처와 유사한, 특정 지역이나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전문화된 [[https://es.wikipedia.org/wiki/Consejos_en_Espa%C3%B1a|왕실 위원회 제도]]를 창설한 것이다. 왕을 수장으로 각 지역 행정기구와 분야별 전담 위원회들이 투트랙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본격적인 행정 집행은 중간에 있는 왕을 중심으로 관련 부서 위원회원들이 모여서 자문, 공론 형성 이후 집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각종 부서 위원회원들의 구성은 현지 유력자, 관련 전문 관료 계층들이 추천한 후보자들 중 왕이 선택하고 후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해당 부처들 내부는 마찬가지로 카톨릭 공동왕 시절 스페인의 교육, 문화 개혁을 주도했던 [[히메네스 데 시스네로스]] 추기경이 기틀을 쌓아, 펠리페 2세 본인이 대거 키운 인문 대학 출신 전문 세속/종교 관료들이 실무를 담당하는 체계였다. 이런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권력의 중심을 왕에게 쏠리게 하고, 국가 통치 하부 부서가 자기들끼리 작당하거나 마음대로 움직이는걸 방지하는 장점이 있었으나, 빠른 대응과 해결을 요구하는 단기적 문제에 빨리 대처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 이 왕실 위원회와는 별개로 왕의 권위를 대리하며 현지 행정부로 작동한 아메리카, 이탈리아 등 각지 부왕령 제도 또한 펠리페 2세 때 완성되었다. 기본적으로 스페인은 [[서로마제국]] 시절부터 사회문화적으로 로마의 인프라가 뿌리깊게 자리잡은 곳이기도했고, 지정학적으로도 이탈리아와 가까워서 비교적 일찍 [[르네상스]] 문예부흥의 영향을 받아 이미 이전 15세기부터 인문교육 과정을 받은 전문 관료집단 양성 정책이 일찍부터 자리잡았다.[* 15세기 말 가톨릭 공동왕 시절 이런 문화적 역량이 실질 국가 통치 역량으로 전환될수 있는 시스템의 큰 틀이 짜였으나, 부왕인 카를로스 1세는 애초에 출신도 외국인이었는데다가 처음엔 통치에 대한 저항도 컸고, 이후에도 워낙 대외 원정과 전쟁에 바빠 스페인엔 얼마 있지도 않고 대리인을 중심으로 통치했다.] 여전히 중세적 왕국 체계에 머무르던 스페인을 본격적으로 [[카스티야]] 중심으로 통합해 세계 각지에 흩어진 식민지, 속방들을 중앙에서 적극적으로 통치할 체계를 만든건 펠리페 2세의 공이라 할수있다. 게다가 이런 구체적인 통치 기구들 뿐만 아니라 성문화된 통치행위 넘어서 나라를 지탱할 엘리트들의 정치적 정체성, 종교 이데올로기, 문화적 사조등을 적극 후원한 점에서 펠리페 2세의 치세는 '''스페인 제국이 온전하게 스페인의 것이 된 시기'''라 평가받는다.[* José Martínez Millán, Historia de Felipe II, rey de España (1998) 참조] 실제로 펠리페 2세 사후 계승한 [[펠리페 3세]], [[펠리페 4세]], [[카를로스 2세]] 같은 후기 [[합스부르크 가문|합스부르크 왕조]] 왕들은 아무리 봐도 능력상 영 좀 떨어지는[* 펠리페 4세가 그나마 알고보니깐 그리 일 안하고 손놓고 있던 군주는 아니더라 재평가받지, 펠리페 3세는 여전히 평가가 박하다. 아예 지체장애인이었던 카를로스 2세야 말할것도 없고.] 군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펠리페 2세 시절 마련된 전문화된 관료집단 중심 행정, 통치 체계는 한번도 붕괴한 적이 없다. 즉, 무능한 국왕들이 즉위했지만 통치시스템의 효율화로 강국으로써의 지위를 계속 유지했다.[* 특히 1640년대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며 스페인 패권 몰락이 가시화된 시기에도 성격 자체가 아예 반란을 넘어 국제전이 된지 오래였던 네덜란드와, 애초에 역량 자체가 다른 속방과 차원이 달랐던 포르투갈을 제외하고 [[카탈루냐]], [[나폴리]], [[시칠리아]] 모두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란은 결국 성공적으로 진압되었으며, 핵심 본토인 카스티야 지방은 무어인들의 지역 민족적 반란 제외하곤 그 흔한 반란 하나 겪지 않았다.] 16-17세기 전성기 스페인 제국이 대내외적으로 전쟁과 적, 불만세력들이 끊임없었는데도 불구하고 2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서유럽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건 펠리페 2세 시절 완성된 거대한 세계제국을 통치할수 있는 행정체계의 역할이 지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